인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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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문(仁政門:보물813호)과 인정전(仁政殿:국보225호)
인정전
인정문(仁政門:보물813호)

인정문은 창덕궁의 중심 건물인 인정전의
정문이다. 효종·현종·숙종·영조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 천장은 천장 재료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이며, 단청은 가장 소박하게 꾸몄다.

왕위를 이어받는 의식이 거행되던 곳으로, 정전인 인정전과 함께 조선왕조 궁궐의 위엄과 격식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인정전

인정전(仁政殿:국보225호)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던 곳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앞쪽으로 의식을
치르는 마당인 조정(朝廷)이 펼쳐져 있고,
뒷쪽으로는 북한산의 응봉으로 이어져 있다.

2단의 월대 위에 웅장한 중층 전각으로 세워져 당당해 보이는데, 월대의높이가 낮고 난간도 달지 않아
경복궁의 근정전에 비하면 소박한 모습이다.

인정전은 겉보기에는 2층이지만 실제로는 통층 건물로 화려하고 높은 천장을 볼 수 있 다. 바닥에는 원래 흙을 구워 만든 전돌이 깔려 있었으나, 지금은 마루로 되어있다. 전등, 커튼, 유리 창문 등과 함께 1908년에
서양식으로 개조한 것이다. 인정문 밖 외행각(外行閣)에는 호위청과 상서원 등 여러 관청들을 두었다.
1405년(태종 5)에 창덕궁 창건과 함께 건립되었으나 1418년(태종 18) 박자청에 의해 다시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0년(광해 2)에 재건, 1803년(순조 3)에 소실된 것을 이듬해에 복원해 현재에 이른다.
외행각 일원은 1991년 이후에 복원했다. 인정전은 국보 제2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인정전

인정전의 내부

인정전 안에는 정면에 임금님의 용상이 있고 그 뒤에는 나무로 만든 곡병과 곡병 뒤에는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라는 병풍이 있다.

병풍에는 음양을 뜻하는 해와 달이 있으며 이는 다시
왕과 왕비를 상징한다. 그 아래 다섯 개의 산봉우리는
우리나라의 동,서,남,북,중앙의 다섯 산을 가리키며 이는 국토를 의미한다.

이것은 임금이 중앙에서 사방을 다스리고, 음양의 이치에 따라 정치를 펼친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인정전 그리고 주변에는 유리창을 비롯하여 전구나 커튼 등
서양 장신구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구한말 외국과의 수교 후 다양한 외래 문물이 들어 온 것이며, 1907년
순종이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한 후에 인정전의
실내바닥이 전돌에서 마루로 바뀌고, 전구가 설치되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참고로 5대궁 중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온 곳은
1887년 경복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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